기대를 버려야 관계가 편해진다는 거짓말

사람을 대할 때의 기대감, 버리는 게 맞을까?

사람인 이상 남에게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만족하거나, 실망하게 되곤 한다.

이전에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방식과 경험으로 세상을 이해하기에, 남과 상황을 내 관점에서만 판단하지 말자‘는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이 ‘다름’이라는 전제는 필연적으로 관계 속 ‘기대’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기대감.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우리는 남에게 기대를 하게 된다. 여기서 기대의 정도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어떤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기대감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 사람인 이상 기대하는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면, 상대방에게 실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관계가 나빠지거나 불건강해질 수 있다. 보통 연인이나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상대방에게 더 큰 기대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종종 큰 실망을 하거나 서운해지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매체나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실망하지 않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길”이라고들 한다. 나는 이 의견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를 안 할 수 있지? 관계의 밀도나 거리에 따라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기대가 없는 관계가 무작정 좋은 게 맞을까? 기대가 없다면 서로 관계의 발전도 없는 것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제는 ‘기대’ 그 자체가 아니라, 소통 없이 홀로 쌓아 올린 ‘일방적인 기대’였다.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은 건강함이 아니라 어쩌면 ‘무관심’에 더 가깝다. 관계의 발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람 관계에서 기대감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기대는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고, 상대방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맞춰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로 맞출 수 있는 영역과 없는 영역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존중하거나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시를 한번 들어보자. 연인 관계에서 누군가는 연인을 매일 보고 싶어 하고, 생일인 만큼 큰 선물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잦은 야근으로 지쳐 매일 보기 힘들거나, 금전적인 문제로 큰 선물을 해주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 서로가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정도가 달라 마찰이 생긴다. 여기서 “기대하지 않으면 돼”라고 말하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아침에 연인을 생각해 우산을 챙기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고맙다는 답변을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상대가 다음 날 오후에야 메시지를 확인해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 관계는 건강한 걸까? 기대를 마냥 안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회사 생활도 예시를 들어보자. 실무자는 올해 일을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하고, 그만큼 좋은 평가를 기대한다. 하지만 매니저의 생각은 다르다. 이 사람이 이만큼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기대했고, 딱히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인식의 차이에서 불협화음이 생긴다. 결국 실무자는 회사에 기대하지 않게 되고, ‘열심히 해봐야 소용없다’며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이것이 과연 긍정적인 결과일까? 오히려 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악순환이 시작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 기대감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아래와 같다.

  •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면, 지금의 기대감을 유지한다.
  •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면, 기대감을 내려놓는다.
  • 더 발전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면, 서로의 기대 수준을 맞추는 ‘적극적인 기대 조율’ 과정을 시작한다.

핵심은 세 번째, ‘기대 조율’이다. 일방적인 관계는 건강할 수 없다. 양쪽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들었던 예시를 다시 보자.
연인 관계에서 한 명은 매일 보고 싶어 하고, 다른 한 명은 주 1회를 원한다. 이때 단순히 횟수를 조율하는 것을 넘어, ‘왜’ 매일 보고 싶은지(그것이 사랑을 느끼는 방식이라서), ‘왜’ 매일 보기 힘든지(에너지를 재충전해야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어서)와 같은 근본적인 감정과 상황을 공유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주 2회로 늘리되 저녁에만 잠깐 본다거나, 주 1회를 만나되 연휴에는 더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직장 생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실무자는 평가 전에 매니저와 대화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열심히’와 ‘잘한다’는 것의 방향성을 매니저와 맞춰볼 수 있다. ‘열심히’와 ‘잘한다’는 말의 정의를 서로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매니저가 개발자에게 엔지니어링 역량 외에 매니징이나 기획 같은 다른 영역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기대치의 차이를 인지해야, 그 기대를 만족시키며 나의 보상에 대한 기대값을 높일지, 혹은 내 길을 명확히 하고 현재 상황을 유지할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대화를 해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존재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전글에서 말했던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다. 모든 기대를 100% 맞출 수는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차이를 존중하거나 혹은 관계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 또한 건강한 관계를 위한 용기다.

핵심은 기대감은 관계에 있어서 없을 수 없으며, 그 기대값은 서로 맞춰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값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양방향의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의 발전을 원한다면, 상대방에게 기대감을 버리지 말자. 다만 그 기대를 혼자 키우지 말고, 솔직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양방향으로 맞춰가자. 그리고 기대가 꼭 맞춰질 수 없다는 현실 또한 이해하고 있자. 때로는 맞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