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의 시대에 칼을 고집할 것인가
AI와 함께 변하는 개발의 패러다임
글을 시작하며
이 글에서는 어떤 AI 에이전트가 더 뛰어난지, 어떤 LLM이 좋은지, 혹은 최근 유행하는 새로운 도구를 리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 업무와 일상 전반에 걸쳐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며 느낀 점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다짐을 남기기 위해 적어봅니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해봤다고 착각하지 마라”
최근 제 머리를 강렬하게 친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전 대학교수이자 전 인스타그램 시니어 개발자로 계셨던 홍정모님이 하신 말씀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한국인들은 교육 수준이 굉장히 높고, 무언가 하기 전에 깊이 고민한 뒤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어느 정도 과도기에 들어선 뒤에야 접해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듣고 보는 것이 많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것을 해봤다고 착각하는 일’을 만듭니다.”
정말 뼈아프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 역시 AI에 관심이 많아 Reddit, GeekNews, 유튜브 등을 통해 새로운 도구의 등장을 꾸준히 관찰해 왔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제 손으로 치열하게 써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때 Cursor와 Gemini CLI를 잠시 만져본 경험은 있지만, 실질적인 활용은 사내에서 허용된 Copilot이나 ChatGPT를 쓰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사내에서 프롬프트 스터디를 하거나 VSCode Insider를 통해 신규 기능을 테스트하며 팀 내에 공유하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Copilot의 한계를 벗어난 영역에서 AI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직접 부딪혀보지 않은 채, “저런 게 나오는구나, 나중에 적용해 봐야지” 하고 넘겼습니다. 그러면서 내심 “나는 트렌드를 알고 있고, 단지 환경 때문에 안 쓰고 있을 뿐 뒤처지진 않았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것 같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이러한 안일한 태도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크게 도태시킬 수 있다는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실험
결국 직접 부딪혀봐야만 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도구가 쏟아지고 지난주에 배운 기능이 금세 레거시가 되는 상황이지만, 이 압도적인 변화의 속도 자체를 몸소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던 공부를 이번 구정 명절 연휴를 기점으로 시작했습니다. 연휴 동안 매일 10시간 넘게 스킬, 인스트럭션, 룰(Rule), MCP(Model Context Protocol), AI 에이전트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뜯어보고 적용해 보았습니다.
시스템의 날개를 달고 얻은 자신감
저는 평소에도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코딩을 할 때도 감에 의존하기보다,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업하고 기능 명세를 세워 리스크를 통제하며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성향입니다.
이런 제게 AI는 단순한 코딩 보조 도구를 넘어, 업무 전체를 파이프라인으로 만들어주는 ‘강력한 날개’로 다가왔습니다. 어릴 적 오토핫키(AutoHotkey)로 게임 매크로를 만들며 밤새우던 때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갖 작업들을 자동화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잘한 구현과 세팅을 자동화해 두면, 정작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구상’과 ‘논의’에 온전히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업무에 복귀한 뒤, 새롭게 익힌 테크닉들을 실제 업무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품질과 생산성을 동시에 끌어올린 결과를 보고 동료들도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뛰어난 시니어 개발자가 일반 개발자의 3~5배 퍼포먼스를 냈다면, AI 시대에는 도구를 다루는 1명의 개발자가 10배 이상의 생산성을 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파도에 올라타라
일각에서는 AI의 발전으로 ‘개발자의 종말’이 올 것이라 우려합니다. 하지만 저는 종말이 아니라 ‘개발이라는 패러다임 자체의 진화’ 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유의미했던 지식과 능력들이 미래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언어나 프레임워크가 나올 때마다 개발자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고들 했지만, 돌이켜보면 기존에 알던 지식에서 가지를 쳐나가는 형태의 공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AI 시대는 근본적인 판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내가 반평생 갈고닦아 무기라고 믿었던 기술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과거 칼과 창이 전장을 지배하던 시절, 화약 무기가 등장했을 때 평생 검술을 연마한 병사들이 느꼈을 허탈감도 이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과거의 칼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총의 사용법을 빠르게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사라진 과거의 수많은 전화 교환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를 인정하고 적응하면 됩니다.
결론
위기 속에 기회가 있듯, 지금 이 시대적 변화는 저에게 또 다른 거대한 기회입니다. 물론 지금 제가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AI 활용 능력’이나 ‘파이프라인 구축 능력’조차 훗날에는 평범한 기본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변화가 오더라도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고, 저는 일단 멈추지 않고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